
송옥진 기자
대한민국 언론인상 수상편집자주
매주 출판 담당 기자의 책상에는 100권이 넘는 신간이 쌓입니다. 표지와 목차, 그리고 본문을 한 장씩 넘기면서 글을 쓴 사람과, 책을 만드는 사람, 그리고 이를 읽는 사람을 생각합니다. 출판 기자가 활자로 연결된 책과 출판의 세계를 격주로 살펴봅니다.

김영사가 출간한 '유발 하라리 대표 3부작' 200만 부 기념 한정판 '브릭 에디션'. 케이스 안에 방향제가 들어 있어 벽돌을 부수면(열면), 우드 향이 난다. 김영사 제공
통상 500페이지 이상의 두꺼운 책을 일컫는 '벽돌책'. 벽돌 같은 외양과 무게는 범접하기 어려운 분위기를 풍깁니다. 독자 입장에선 부담스러워 손이 잘 가지 않습니다. 출판사도 벽돌책을 만들 때는 고려할 게 많아집니다. 책이 두꺼워지면 가격이 올라가고, 가격 경쟁력에서 밀리기 쉽지요. 독자에게 완독의 기쁨을 예고하는 얇고 가벼운 책이 얼마나 많습니까.
김영사가 최근 출간한 '유발 하라리 대표 3부작' 한정판은 벽돌책을 향한 이런 거리감을 재치있게 돌파합니다. 유발 하라리의 책 사피엔스(636쪽), 호모 데우스(630쪽), 넥서스(684쪽) 3권이 200만 부를 돌파한 것을 기념해 나온 '브릭 에디션'은 이름처럼 벽돌 모양의 북 케이스에 들어있습니다. 벽돌책임을 전면에 내세울 작정으로, 기획 단계부터 사진을 찍었을 때 벽돌과 같은 질감이 나오도록 신경썼다고 합니다. "인류의 기원과 미래에 대한 하라리의 도발적인 질문이 벽돌을 부수고 나오는 모습을 형상화"했다고요. 김영사 관계자는 "젊은 독자들이 벽돌책을 위트있고 친근하게 접근하도록 하자는 취지"라고 설명했습니다.

김영사가 출간한 '유발 하라리 대표 3부작' 200만 부 기념 한정판 '브릭 에디션'. 김영사 제공
벽돌책은 독자들에게 부담감 한편으로 호기심, 도전 정신을 부르기도 합니다. 요즘 '함께 가면 멀리 간다'는 신조로 벽돌책 격파(독파)를 내건 독서모임들이 많아졌는데요. 벽돌책이라고 하면 제일 먼저 이름이 튀어나오는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719쪽)', 재러드 다이아몬드의 '총균쇠(784쪽)' 등이 단골 독파 목록입니다. 하라리의 책들도요.
올해도 이 리스트에 오를 만한 양서가 많이 출간됐습니다. '마침내 특이점이 시작된다(552쪽)' '예루살렘 이전의 아이히만(864쪽)' '평화를 끝낸 전쟁(996쪽)' '모든 것의 새벽(912쪽)' '다윈의 위험한 생각(952쪽)'···. 두툼한 두께만큼 깊이 있는 지적 모험을 떠날 수 있는 책들입니다. 우리는 어쩌면 완독에 대한 압박감으로 시작조차 하지 않는 것 아닐까요. 여름 휴가 때는 일단 첫 장을 펼쳐 봅시다. 중간에 덮어도 됩니다. 벽돌책 격파, 까짓것 좀 못하면 어떠냐는 가벼운 마음으로요.

올해 국내 출간된 벽돌책들. 왼쪽부터 '예루살렘 이전의 아이히만(864쪽)', '다윈의 위험한 생각(952쪽)', '모든 것의 새벽(912쪽)'.

올해 국내 출간된 벽돌책들. '마침내 특이점이 시작된다(552쪽)'와 '평화를 끝낸 전쟁(996쪽)'.
송옥진 기자 click@hankookilbo.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