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세운 기자
대한민국 언론인상 수상
자녀 입시 비리와 청와대 감찰 무마 등 혐의로 기소돼 징역 2년 형이 확정된 조국 전 조국혁신당 대표가 지난해 12월 16일 경기 의왕 서울구치소 앞에서 수감되기 전 지지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최원석 기자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후 첫 특별사면인 '8·15 광복절 특사' 대상 결정을 두고 심사숙고에 들어갔다. 특히 조국 전 조국혁신당 대표가 포함될지 관심이 쏠린다. 조 전 대표가 7일 열린 법무부 사면심사위원회에서 사면 건의 대상자로 선정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최종 사면 여부는 오는 12일 국무회의 심의·의결을 거쳐 최종 확정된다. 이 대통령의 '결심'이 남았지만 사실상 사면 수순에 들어갔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조 전 대표 사면에 부정적인 의견도 만만치 않다. 국민의힘은 '조국 사면은 보은 사면'이라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여권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가진 조 전 대표가 정치권에 복귀할 경우 파장이 적지 않을 거란 점에서 집권여당 내부에서도 찬반이 갈린다. 징역 2년 형을 확정받은 조 전 대표가 형기의 절반도 마치지 않은 채 풀려난다면 여론도 곱지 않을 전망이다.
이처럼 정계·재계 거물급 인사의 특별사면은 항상 숱한 이야깃거리를 낳았다. 사면이라는 제도 특성상, 특정 인물 봐주기 논란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범털(돈이 많고 권력 있는 재소자를 의미하는 은어)만 누릴 수 있는 특혜"라는 비아냥도 따라붙는다.
그럼에도 정부 수립 이후 2024년까지 77년간 실시된 특별사면은 모두 108차례, 매년 평균 1회 이상 특사가 단행됐다. 비난의 포화를 맞기 십상인데 역대 대통령들이 이토록 사면을 자주 베풀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사면권은 왜 존재하고 오늘날까지 어떻게 작동해왔는지, 특별사면의 역사와 제도의 한계 등을 짚어봤다.
삼국시대부터 오늘날까지 면면한 사면제
사면의 사전적 정의는 '국가원수의 특권으로 범죄인에 대한 형벌권의 전부 또는 일부를 면제하거나, 형벌로 상실된 자격을 회복시켜 주는 행위'를 의미한다. 사면권은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로, 대통령은 헌법 제79조에 의거해 사면·감형 또는 복권을 명할 수 있다.
사면은 일반사면과 특별사면으로 나뉜다. 일반사면은 국회 동의가 필요하고, '특정 범죄'를 대상으로 하며 '형 선고의 효력이 상실'되는 효과를 가진다. 반면 특별사면은 국회 동의 없이 대통령이 독자적으로 행사할 수 있고, '형을 선고받은 자'를 대상으로 하며 '형의 집행이 면제'된다는 점에서 일반사면과 구분된다.
우리나라 역사 속 사면 기록은 삼국시대부터 등장해 고려·조선시대까지 이어진다. 임금 즉위 등 나라에 큰 경사가 있거나 천재지변이 있을 때 사면령을 내렸다. 봉건시대 군주의 특권으로부터 출발한 사면권은 어떻게 오늘날 민주주의 시대에도 제도화된 형태로 명맥을 유지한 것일까. 이는 법치주의의 예외적 수단인 사면권이, 역설적으로 삼권분립을 지탱하는 장치로 활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법 절차도 결국 사람의 일이라 오류 가능성이 항상 존재하고, 이에 행정부가 사면권을 부여받아 사법부를 견제한다는 것이다.
정부 수립 후 첫 사면에 수감자 절반 이상 석방

1987년 7월 9일 김대중(왼쪽) 전 대통령이 2,335명에 대한 특별사면 및 복권조치를 10일 0시를 기해 단행한다는 정부 발표를 듣고 자택에서 부인 이희호(오른쪽) 여사와 함께 손녀딸을 안고 기자들에게 둘러싸여 환한 웃음을 띠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정부 수립 후 첫 사면은 1948년 9월 27일 실시한 '건국 대사면'이다. 그해 7월 취임한 이승만 대통령은 '광복과 건국의 기쁨을 온 국민이 함께 누리자'는 취지로 대규모 사면을 단행했다. 그 결과 살인·방화·강도·성폭행범 등을 제외한 범죄자 6,796명이 혜택을 받았다. 전국 교도소 수감자의 절반 이상이 석방될 정도였다. 이후 이승만 정부는 1951년 특별사면을 시작으로 총 12회 특사를 단행했다. 4·19 혁명 후 허정 권한대행, 윤보선 대통령(장면 내각)이 각 1회 특사를 실시했다.
군부정권에서 특별사면은 사실상 대통령의 권력 유지 도구로 남발된 측면이 있다. 1961년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박정희 대통령은 역대 정부 중 가장 많은 24회의 특사를 시행했다. 1962년에는 네 차례나 특사가 이뤄졌다. 5월 16일에 전년도 5·16 군사 쿠데타 1주년을 기념하고 군사정변 이후 사회적 안정과 국민 통합을 도모한다는 명분으로 1만3,158명을 사면하는 식이었다. 전두환 군부독재 정권 또한 역대 정권 중 두 번째로 많은 19회 특사를 단행했다.
총 7회 특사를 단행한 노태우 정부는 단 한 명을 대상으로 한 특별사면권을 처음 발동해 화제가 됐다. 대한항공(KAL) 858기 폭파 사건의 범인 김현희가 그 대상이었다. 북한 공작원 출신 김현희는 KAL기 폭파범으로 검거돼 1990년 3월 사형이 확정됐지만, 같은 해 대북 선전 및 첩보 목적 등을 이유로 4월 12일 특별사면됐다.
문민정부 이후 '대통령 측근 봐주기' 논란 가열

노태우 전 대통령이 1997년 12월 22일 특별사면된 후 서울구치소 앞에서 소감을 밝히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김영삼 대통령은 특사를 8회 단행했다. 특별사면권 오남용의 대표 사례로 지적받는 '전두환·노태우 사면'이 여기에 포함된다. 1997년 12월 김영삼 대통령은 후임으로 당선된 김대중 대통령과 회동하며 두 전직 대통령을 사면할 뜻을 전했다. 김대중 대통령이 동의하면서 두 사람은 1997년 4월 17일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된 지 8개월 만에 풀려났다. 비리 등으로 수감된 대통령 측근들이 본격적으로 풀려나기 시작한 것도 김영삼 정부 시절이었다. 1995년에는 민주화 이후 유일한 일반사면을 단행, 경미한 행정법규를 위반한 시민과 징계 공무원 등 258만여 명의 형을 면해줬다.
김대중 대통령은 역대 가장 큰 규모의 특사를 단행했다. 1999년 12월 31일 대통령 신년 은전 조치로 49만6,000명에게 형 집행정지와 금융제재 해지 등의 혜택을 준 것. 2002년 월드컵 개최 기념 운전면허 벌점 감면으로 481만 명을 구제해 주기도 했다. 다만 김영삼 대통령 아들 김현철씨, 최측근 권노갑 전 의원을 사면한 일은 "원칙 없는 사면"이라는 비판 속에 대통령 고유 권한인 사면권이 정치적으로 남용될 수 있다는 논란을 남겼다.
노무현 정부에선 총 8회 특사가 단행됐는데, 노무현 대통령 역시 '측근 봐주기'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2005년 석가탄신일 기념 특별사면 대상에 오랜 조력자이자 후원회장인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을 포함시킨 것. 강 회장은 당시 불법 대선자금 사건에 연루돼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상태였다.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현 국민의힘)은 "'무권유죄 유권무죄'의 르네상스가 왔다"고 비판했다.
끊이지 않는 '재계 총수 특혜' 논란

2008년 8월 15일 광복절 건국 60주년 경축 기념 특사로 특별 사면된 정몽구(왼쪽) 현대차그룹 회장과 최태원(가운데) SK그룹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한국일보 자료사진
이명박 정부에선 '재계 인사 사면 특혜' 논란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시작은 이건희 전 삼성전자 회장 단독 사면이었다. 2008년 경영권 편법 승계, 조세포탈 혐의 등으로 기소된 이 전 회장은 이듬해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받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 자격이 정지됐다. 정부는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이 회장의 IOC 위원 자격 회복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명분으로 특별사면을 단행했다. 사면권 제한적 행사를 대선 공약을 내걸었던 박근혜 대통령도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이재현 CJ그룹 회장을 사면해 대기업 총수 특혜, 사면권 남용 비판을 피하지 못했다.
직전 두 정부는 모두 전임 대통령에 대한 특별사면을 단행했다. 문재인 정부는 임기 마지막 해인 2021년 12월, 국정농단 혐의로 수감 중이던 박근혜 전 대통령을 사면했다. 촛불시위를 통해 탄생한 정부가 탄핵된 전직 대통령을 사면했다며 국민적 반발이 쏟아지기도 했다. 윤석열 정부는 뇌물 수수 및 횡령 혐의 등으로 징역 17년이 확정된 이명박 전 대통령을 2022년 특별사면·복권했다. 윤 대통령이 검사 시절 이 전 대통령을 구속했던 만큼, 이 사면을 두고 "정권의 정체성을 스스로 부정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특사 폐지" "독립적 사면심사위 설치" 개편 요구

광복절 특사 계획이 발표된 2008년 8월 12일 시민단체 회원들이 청와대 부근인 서울 청운동 사무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재벌 총수의 사면에 반대함과 동시에 양심수 전원석방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전문가들은 현행 특별사면 제도는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김재윤 건국대 로스쿨 교수는 "한국은 제왕적 대통령제라 할 만큼 대통령 권력이 막강해 특별사면에서도 자의적 권한을 휘두를 가능성이 크다"며 "대통령은 선거 과정에서 자신을 도와준 정치적 동지들과 편법이든 합법적이든 후원한 기업 총수들을 챙길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사면 건의권을 갖는 사면심사위원회도 외부 위원이 제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구조라 제도적 효과를 보기 어렵다는 진단도 내놨다. 김 교수는 "사면권은 헌법에 보장된 권리라 완전 폐지는 사실상 어렵다"며 사면 제도 중 일반사면과 특별감형은 남겨두되 오남용 우려가 큰 특별사면은 폐지하자는 대안을 내놨다.
장영수 고려대 로스쿨 교수도 "국민통합이라는 명목하에 기업인·정치인 사면이 정기적으로 행해지고 있는데, 사법부 결정에 대해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만 실시돼야 하는 것이 사면의 본질"이라고 지적했다. 또 "실제로 사면된 인물들을 보면 부당한 탄압을 받았다기보단 부정·비리 등으로 처벌받은 경우가 많은데, 이런 이들을 사면하면 국민 여론은 통합은커녕 분열된다"고 비판했다. 장 교수는 "사면 오남용을 막기 위해 유명무실한 사면심사위를 독립된 기관으로 재구성하거나 내실화하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오세운 기자 cloud5@hankookilbo.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