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대한민국 언론인상 수상편집자주
※ 차고 넘치는 OTT 콘텐츠 무엇을 봐야 할까요. 무얼 볼까 고르다가 시간만 허비한다는 '넷플릭스 증후군'이라는 말까지 생긴 시대입니다. 라제기 한국일보 영화전문기자가 당신이 주말에 함께 보낼 수 있는 OTT 콘텐츠를 2편씩 매주 토요일 오전 소개합니다.

네팔 전통 의상을 입은 락파 셰르파. 그는 네팔 여성 최초로 에베레스트를 등정했고, 여성으로서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에베레스트를 올랐다. 넷플릭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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락파 셰르파(52)는 학교를 다닌 적이 없다. 그가 나고 자란 네팔의 인습 때문이었다. 남동생을 업고 통학시키기 위해 매일 2시간 정도 걸어 가본 정도가 학교에 대한 기억이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정규 교육을 받을 수 없었던 락파는 ‘취업’에서도 차별을 받았다. 어려서부터 산을 좋아했고, 체력이 남달랐으나 그는 에베레스트 등정대 일을 도울 수 없었다. 락파는 머리를 짧게 자르고 남장을 한 후에야 등정대에서 일을 얻었다.
①네팔 여성 최초 최고봉에 오르다

세계 최고 여성 산악인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락파 셰르파는 미국 코네티컷주 한 식료품 가게에서 일한다. 넷플릭스 제공
락파의 꿈은 에베레스트 등정이었다. “여성은 남성이 하는 걸 다 할 수 있다”라는 점을 입증하고 싶었다. 세계 최고봉에 오르기 위해선 돈이 필요했다. 그는 달리기대회 우승 상금으로 받은 2,000달러로 찻집을 열었다. 손님들에게 포부를 밝히고 도와달라 사정했다. 락파의 노력은 네팔 정부를 움직였다. 2000년 락파는 네팔 여성 최초로 에베레스트에 올랐다.
락파의 삶에 탄탄대로가 열린 걸까. 유명인사가 된 그에게 사랑이 찾아왔다. 루마니아 출신 미국 산악인 게오르그 디마레스크(1962~2020)였다. 락파는 게오르그와 결혼했고, 미국으로 이주했다. 둘은 딸을 얻었고, 산악 등반 사업으로 생계를 모색했다.
②에베레스트 등정보다 힘든 세파

락파 셰르파는 2000년 네팔 여성 최초로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한다. 넷플릭스 제공
락파는 2022년 에베레스트 등정에 나선다. 그는 코네티컷주 한 도시 식료품 가게에서 일하며 두 딸과 살고 있다. 결혼 후 20년 사이 그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는 왜 49세에 세계 최고봉 등정에 다시 나선 걸까.
락파의 결혼 생활은 불행했다. 남편은 문맹인 락파를 종종 무시했고, 주먹을 자주 휘둘렀다. 락파는 에베레스트에서 안식을 찾았다. 모든 것이 발아래 있는 순간만으로 세상 시름이 씻겨 나갔으니까. 그렇게 해발 8,848m를 아홉 차례 오르며 여성 최다 세계 기록을 세웠다. 락파의 신산한 삶은 어쩌면 에베레스트 등정보다 더 힘겨운 건지 모른다.
③인생이라는 최고봉에 오르다

락파 셰르파는 딸들을 위해 에베레스트 등정에 나선다. 넷플릭스 제공
다큐멘터리는 열 번째 에베레스트 등정에 나선 락파의 현재와 과거를 오간다. 락파의 삶은 전통이라는 이름의 인습에 대한 투쟁의 연속이었다. 그는 게오르그와 결혼하기 전 다른 남자 사이에 아들을 낳았다. 락파의 어머니는 수치스럽다며 딸을 수십 년 만나지 않았다. 그는 세파를 이겨내며 에베레스트에 올랐고, 자기 삶을 개척해 나갈 수 있었다.
락파가 네팔 전통에 매번 반기를 든 건 아니다. 이혼을 금기시하는 네팔인의 삶을 이어가려다 가정폭력에 시달려야 했다. 그를 일으켜 세운 건 딸들이다. 락파는 딸들에게 삶을 살아갈 용기를 주고 싶었다. 사람은 인생이라는 산 등정에 실패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락파는 넘어지고 일어서기를 반복하며 자기 인생이라는 최고봉에 오른다. 감동이라는 흔해 빠진 단어가 새삼스러운 삶이다.
뷰+포인트
락파는 열 번째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한다. 아직 깨지지 않은 여성 세계 기록이다. 락파의 타고난 신체조건이 큰 몫을 한 업적으로만 치부할 수는 없다. 그는 사회통념과 맞서 싸우며 자신의 재능을 세상에 펼쳤다. 그가 어려서부터 에베레스트 등정을 꿈꿨던 건 산 뒤편이 궁금해서다. 호기심이 꿈을 만들었고, 꿈이 인생을 만든 셈이다. 히말라야산맥의 설경으로 더위를 잊히게 만드는 다큐멘터리다. 자연도 경이롭지만 인간의 의지 역시 놀랍다는 걸 새삼 확인하게 된다. 영국 루시 워커 감독이 연출했다. 그는 세계 독립영화계 주목을 받는 감독 중 한 명이다.
***로튼토마토 지수: 평론가 100%, 시청자 90%
***한국일보 권장 지수: ★★★★☆(★ 5개 만점, ☆ 반 개)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wenders@hankookilbo.com




